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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화요일의 21입니다. 니콘 ZF로 찍은 사진을 블로그에 올릴 때마다 조금 웃긴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을 찍을 때는 별생각이 없었다. 카페에 앉아 있다가, 길을 걷다가, 빛이 괜찮아서, 그림자가 좋아서, 혹은 그냥 손이 심심해서 셔터를 눌렀다. 그런데 막상 블로그에 올리려고 사진을 고르면 그때부터 사진이 조금 다르게 보인다. 이 사진이 왜 마음에 들었는지, 이 색감이 왜 괜찮았는지, 이 카메라를 들고 나갔을 때 왜 굳이 스마트폰이 아니라 ZF를 꺼냈는지 다시 보게 된다. 참 피곤한 물건이다. 카메라 하나 들였을 뿐인데, 사진을 고르는 시간까지 은근히 늘려 놓는다.

니콘 ZF는 그런 면에서 꽤 성가신 카메라다. 그냥 꺼내서 찍고 넣으면 될 일을 괜히 한 번 더 만지게 만든다. 상단 다이얼을 보고, 셔터스피드를 확인하고, ISO를 어떻게 둘지 생각하고, 픽처컨트롤을 괜히 한 번 바꿔 본다. 물론 안 그래도 된다. 그냥 오토나 P모드로 두고 찍어도 충분히 잘 나온다. 그런데 ZF는 이상하게 사람을 그렇게 두지 않는다. 카메라가 조용히 옆에서 부추긴다. 야, 그래도 네가 나를 들고나왔는데 이 정도는 만져야 하지 않겠냐 하는 식이다. 참 얄미운 물건이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들이다.

사실 블로그에 올릴 사진이라면 스마트폰으로 찍어도 충분하다. 요즘 스마트폰 사진은 밝고, 선명하고, 보정도 알아서 잘 된다. 특히 블로그용으로 압축해서 올릴 거라면 더더욱 그렇다. 보는 사람은 이게 풀프레임 미러리스로 찍은 건지, 스마트폰으로 찍은 건지 크게 신경 쓰지 않을 수도 있다. 어쩌면 대부분은 모른다. 아니, 알아도 별 상관 안 한다. 그런데도 굳이 ZF를 꺼내 드는 이유가 있다. 결과물만의 문제가 아니라, 찍는 동안의 기분이 다르기 때문이다. 스마트폰은 재미가 없다.

ZF로 사진을 찍으면 사진을 조금 더 오래 보게 된다. 대단한 예술가라도 된 것처럼 굴겠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그런 말은 좀 민망하다. 그냥 길가의 간판 하나, 테이블 위의 컵 하나, 창가에 들어온 빛 하나도 스마트폰으로 찍을 때와는 다르게 보인다. 손에 들린 물건이 달라지면 보는 태도도 조금 달라진다. 스마트폰은 기록이고, ZF는 굳이 말하자면 관찰이다. 물론 둘 다 사진이다. 스마트폰이었다면 대충 찍고 넘겼거나 아예 지나쳤을 것도, ZF를 들면 잠깐 멈춰서 빛이 어떻게 들어오는지, 색이 어떻게 남는지 다시 보게 된다.

스마트폰으로 찍은 사진들이다.

스마트폰 사진은
잘 나온 사진과 못 나온 사진이 비교적 빨리 갈린다. 흔들렸으면 지우고, 너무 어두우면 지우고, 구도가 별로면 넘기면 된다. 그런데 ZF로 찍은 사진은 이상하게 한 번 더 보게 된다. 이게 잘 나온 건가, 아니면 그냥 내가 그때 기분을 같이 기억해서 버리기 아까운 건가. 그런 쓸데없는 고민이 생긴다. 사진 정리라는 이름으로 앉아 놓고, 어느 순간 사진을 고르는 게 아니라 그날을 다시 뒤적이고 있다. 참 비효율적인 일이다. 그런데 취미가 원래 그렇다. 효율만 따지면 카메라보다 스마트폰이 낫고, 블로그보다 짧은 SNS가 낫고, 글보다 사진 한 장이 낫다. 그런데 그렇게만 살 거면 애초에 사진은 왜 찍겠나.

 

아이스커피 컵을 가까이 두고 찍은 사진이다. 컵 위 플라스틱 뚜껑과 음료 표면에 실내조명이 반사되면서 따뜻한 분위기가 먼저 들어온다. 배경은 크게 흐려져 있고, 오른쪽의 포장지와 왼쪽의 디저트는 형태만 남아 있어서 테이블 위의 사적인 시간처럼 보인다.

 

위 사진과 거의 같은 구도지만, 필름 그레인이 들어가면서 분위기가 더 거칠어졌다. 커피 컵 주변의 빛 번짐과 노이즈가 섞이면서 전체적으로 더 감성적인 인상을 준다. 일부러 질감을 남겼다.

 

딸기가 올라간 디저트를 얕은 심도로 찍은 사진이다. 빨간 딸기와 갈색 케이크, 따뜻한 테이블 색이 한 덩어리로 묶이면서 부드러운 카페 사진 느낌이 난다. 카페는 아니고 집이지만. 배경은 많이 흐려져 있고, 피사체 주변도 완전히 선명하지 않아서 선명한 디저트 기록보다는 그날의 분위기를 남긴 사진처럼 보인다.

ZF로 사진을 찍으면 결과물이 설령 조금 못 나와도 재미가 있다. 이 사진을 언제 찍었는지, 왜 찍었는지, 찍는 순간에 어떤 설정을 만졌는지, 결과가 왜 마음에 들었는지 같은 것들이 따라온다. 그래서 가끔은 애매한 사진도 쉽게 지우지 못한다. 사진 자체만 보면 지워도 될 것 같은데, 그 사진을 찍던 순간이 같이 걸린다. 셔터스피드를 바꿔 봤던 것, 픽처컨트롤을 고민했던 것, 뷰파인더 안에서 빛이 어떻게 들어오는지 잠깐 멈춰 봤던 것. 그런 것들이 사진 옆에 조용히 붙어 있다. ZF는 결과물 하나만 보고 판단하기 어려운 카메라다. 선명하고 깔끔한 사진도 좋지만, 그보다 더 오래 남는 건 찍는 동안의 즐거움이다. 다이얼을 돌리고, 화면을 보고, 다시 한 번 더 확인하는 그 과정 말이다. 사진이 조금 못 나와도 괜찮다. 적어도 찍는 동안은 재미있었고, 다시 볼 때도 그 재미가 조금은 살아난다.

이번 사진은 조금 이상한 방식으로 찍었다. 필름 카메라에 쓰는 AF NIKKOR 35-70mm 렌즈를 ZF에 제대로 물린 게 아니라, 어댑터도 없이 렌즈를 거꾸로 들고 마운트 앞에 대고 찍어 본 사진이다. 처음부터 거꾸로 렌즈를 대고 찍어야겠다고 작정한 건 아니었다. 그냥 키보드 사진을 찍다가 조금 더 가까이 당기고 싶었다. 크롭을 할까 생각도 했다. 어차피 ZF 파일이면 어느 정도 잘라 써도 되니까, 적당히 찍고 나중에 잘라내면 그만이다. 그런데 또 그러다 보니 괜히 매크로처럼 찍어 볼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예전에 렌즈를 거꾸로 대면 매크로처럼 쓸 수 있다는 이야기를 본 적이 있어서, 그냥 해 봤다. 말 그대로 그냥 해 봤다. 우아한 세팅도 아니고, 정확한 매크로 촬영도 아니다. 손으로 렌즈를 들고 카메라 앞에 맞춰 보면서 겨우 초점을 잡는 거다. 그래서 사진을 보면 초점이 아주 정확하게 맞았다고 하기는 어렵다.

그런데 이게 또 나쁘지만은 않다. 원래 키보드 사진을 이렇게까지 가까이 볼 일은 별로 없는데, 렌즈를 거꾸로 대고 찍으니 키캡 하나가 커 보인다. 평소에는 그냥 손가락으로 누르던 키가 갑자기 피사체가 된다.

 

같은 방식으로 한 번 더 찍어 봤다. 35-70mm 렌즈를 거꾸로 들고 ZF 앞에 대니 초점 맞추는 것부터 쉽지 않다. 뷰파인더 안에서 피사체를 찾는 것부터가 꽤 어렵다. 렌즈가 제대로 고정된 것도 아니고, 손으로 거리와 각도를 맞춰야 하니 선명한 사진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첫 번째 사진은 거의 실패에 가깝고, 두 번째와 세 번째 사진도 초점이 완벽하게 맞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런데도 재미있다. 결과물이 반듯하지 않아도, 이런 식으로 카메라 앞에서 이것저것 해 보는 과정 자체가 남는다. ZF는 이런 쓸데없는 실험까지 하게 만든다. 효율은 엉망인데, 취미 사진은 가끔 이런 엉망에서 제일 오래 논다. 애초에 재미있어서 산 카메라니까, 이런 비효율도 나쁘지 않다.

 

물론 전부 그럴듯하게 나온 건 아니다. 이 사진처럼 완전히 놓친 것도 있다. 피사체는 형태를 잃고, 초점은 어디에도 제대로 걸리지 않았다. 사진이라기보다 빛과 색이 뭉개진 흔적이다. 그래도 이런 실패가 같이 있어야 앞의 사진들이 왜 그나마 성공한 편인지 보인다. 잘 나온 사진만 올리면 꽤 능숙하게 찍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런 사진을 몇 장씩 지나가야 겨우 볼만한 사진 하나가 나온다. 카메라 취미라는 게 늘 그렇다. 결과만 보면 그럴듯한데, 중간 과정은 대체로 이런 식이다.

 

그다음에 찍은 것은 그래도 형태가 조금 남았다. 최소한 무엇이 있는지는 보인다. 이 사진도 성공이라고 말하기에는 애매하다. 매크로 사진이라기보다는 렌즈를 거꾸로 들고 헤매다가 우연히 걸렸다. 그런데 그 우연한 흐림이 나쁘지만은 않다. 실패와 성공 사이 어딘가에 걸린 사진이다.

앞의 사진이 완전히 놓친 사진이었다면, 이건 겨우 붙잡은 사진이다. 원하는 대로 찍었다기보다는, 우왕좌왕하다가 이 정도면 남겨도 되겠는데 싶은 결과물이다. 그래서 더 재미있다. 거꾸로 렌즈를 대고 찍는 방식은 정확하게 통제하는 촬영이라기보다, 몇 번 실패하다가 우연히 걸리는 사진을 줍는 거다.

 

35-70mm를 거꾸로 대고 찍으니, 얼굴을 훨씬 가까이 담을 수 있었다. 이게 정말 되나 싶어서 해 본 사진이고, 결과도 딱 그 정도다. 완성도 높은 사진은 아니지만, 어디까지 가까이 들어갈 수 있는지 확인하는 재미는 있었다. 40mm로 찍은 사진은 훨씬 보기 편하다. 얼굴도 보이고, 액자 틀도 보이고, 내가 무엇을 찍었는지도 바로 알아볼 수 있다. 다만 40mm는 초점 거리 때문에 저 정도로 바짝 들이대기는 어렵다. 둘 다 재미는 있는데, 이상한 짓을 한 사진이 기억에는 더 오래 남는다.

이런 사진은 완성도보다는 시도 자체가 재미있다. 어댑터도 없고, 고정도 안 되고, 초점 맞추기도 불편하고, 촬영 자세도 우스꽝스럽다. 카메라 앞에 렌즈를 거꾸로 들고 이게 맞나 싶은 상태로 셔터를 누르게 된다. 그런데 막상 결과물을 보면 또 버리기 애매하다. 선명한 사진은 아닌데, 책상 위의 작은 물건을 낯설게 만들어 준다. ZF가 성가신 이유가 또 하나 늘었다. 그냥 찍으면 될 걸 괜히 렌즈까지 거꾸로 들게 만든다.

 

 

그렇게 한참 이상한 방식으로 찍다가, 다시 평범하게 사진을 찍었다. 그냥 눈에 들어오는 것들을 담았다. 사진이라는 게 꼭 특이한 방법을 써야 재미있는 건 아니다. 오히려 아무렇지 않게 찍은 사진이 더 오래 남을 때도 있다.

위 사진들은 그런 식으로 찍은 것들이다. 눈앞에 있던 물건, 그때 들어온 빛, 별생각 없이 눌렀던 셔터가 남긴 결과물이다. 특별한 피사체도 아니고, 일부러 힘을 준 사진도 아니다. 그런데 ZF로 찍으면 이런 평범한 것들도 한 번 더 보게 된다. 그냥 그날 카메라를 들고 있었고, 눈앞에 있던 것들이 조금 마음에 들어서 찍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사진 취미가 늘 먼 곳이나 멋진 피사체가 있어야 하는 하는 건 아니다.

 

카메라로 카메라를 찍어 보는 것도 해 봤다. 사실 카메라를 찍는 사진은 조금 웃긴다. 사진을 찍으려고 산 물건을 다시 피사체로 세워 놓고 찍는 거니까. 그런데 또 이런 게 재미있다. 카메라는 쓰는 물건이면서 동시에 보고 싶은 물건이기도 하다. 가까이 붙어서 찍다 보니 니콘 로고와 렌즈 표기가 먼저 들어온다. 바디에 묻은 먼지, 오래된 플라스틱의 반질거림, 렌즈 경통의 고무 질감 같은 것들이 그대로 보인다. 사진 찍는 연습이라면 이런 사진도 나쁘지 않다. 어디에 초점을 둘지, 얼마나 가까이 갈지, 배경을 얼마나 남길지 감을 잡아 보는 데 꽤 좋다. 이런 사진을 찍다 보면 결국 장비도 피사체가 된다.

사진을 찍는 도구인데, 막상 카메라 앞에 세워 두면 그 자체로 볼거리가 된다. 그래서 카메라 취미는 위험하다. 사진만 찍으면 될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카메라까지 찍고 있다. ZF를 산 이유가 또 하나 늘었다. 찍을 것도 찍고, 찍는 물건도 찍게 만든다. 나도 몰랐다. 필름 카메라 하나 샀을 뿐인데, 그게 ZF까지 가는 입구였을 줄은.

생각해 보면 시작은 필름 카메라였다. 그냥 한 번 써 보고 싶어서 들인 건데, 그게 여기까지 올 줄은 몰랐다. 필름 카메라를 만지다 보니 다이얼이 좋았고, 다이얼이 좋다 보니 클래식한 카메라가 눈에 들어왔고, 그러다 보니 ZF까지 왔다.

 

사진을 잘 찍게 됐냐고 물으면 모르겠다. 그건 아직도 모호하다. 대신 사진을 더 자주 보게 된 건 맞다. 찍기 전에도 보고, 찍고 나서도 보고, 블로그에 올리려고 또 본다. 그 과정에서 쓸 만한 사진도 나오고, 어이없는 사진도 나오고, 왜 찍었는지 모르겠는데 이상하게 남겨 두고 싶은 사진도 나온다.

필름 카메라 하나로 충분할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 ZF를 들고 있고, 그걸로 필름 카메라를 찍고 있다. 참 멀리도 왔다. 사진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샀는데, 이제는 카메라를 찍으려고 또 카메라를 들고 있다. 이게 정상적인 취미 생활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재미는 있다. 그리고 애초에 재미있어서 시작한 일이니, 지금은 그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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