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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수요일의 21입니다. 아침에 분명 100%였다. 충전기에서 뽑을 때 화면 오른쪽 위에 배터리가 꽉 차 있었고, 오늘 하루 정도는 문제없다고 생각했지. 그런데 이게 뭐야. 밖에 나와서 카톡 몇 번 보고, 지도 한 번 켜고, 잠깐 인터넷 좀 보고, 사진 한두 장 찍었을 뿐인데 벌써 70%다.

처음에는 요즘 폰 배터리 왜 이러냐, 내 폰 이제 늙었나, 이러면서 대충 투덜대고 끝내. 그런데 조금만 생각해 보면 마냥 가볍게 넘길 일도 아니야. 핸드드폰 배터리가 빨리 닳기 시작하면 단순히 충전을 자주 해야 하는 불편함에서 끝나지 않거든. 화면 오른쪽 위 작은 숫자 하나가 하루 전체를 괜히 신경 쓰이게 해. 배터리가 없으면 뭘 하든 한 번 더 생각하게 돼. 지도는 켜도 되나, 사진은 찍어도 되나, 집에 갈 때까지 버티나.

100%일 때는 든든해. 오늘은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고, 사진도 몇 장쯤은 아무렇지 않게 찍을 수 있을 것 같고, 지도도 마음 편하게 켤 수 있을 것 같아. 그런데 50% 아래로 내려가는 순간 얘기가 달라져. 멀쩡하던 하루가 슬슬 눈치 보는 하루로 변하거든. 이때부터는 핸드폰을 쓰는 게 아니라 핸드폰 잔량을 살피게 돼.

 

집에서는 괜찮아. 충전기가 있으니까. 침대 옆에도 있고, 책상 위에도 있고, 어디선가 굴러다니는 케이블도 하나쯤은 있어. 집에서는 배터리 20%가 되어도 그냥 꽂으면 끝이야. 그런데 밖에서는 40%만 되어도 괜히 조심스러워져. 폰을 꺼내는 횟수도 줄고, 별것도 아닌데 화면 밝기부터 낮추게 돼.

스마트폰은 자유롭게 쓰려고 산 물건인데, 정작 배터리가 줄어들기 시작하면 그 자유부터 먼저 줄이게 돼. 화면 밝기를 낮추고, 앱을 닫고, 알림을 줄이고, 괜히 검색 한 번 하는 것도 참게 되지. 어느 순간 사용 방식을 바꿔놓는 거야. 배터리 15%만 되어도 여유가 금방 사라지니까.

 

보조배터리 들고 다니는 사람? 예전엔 좀 유난스럽다고 생각했어. 하지만 이제는 알아. 그 사람들은 현명한 거야. 불확실성을 아는 사람들이야. 아무 준비 없이 밖에 나갔다가 배터리 9%로 버스 시간표를 확인해 본 사람은 절대로 보조배터리를 비웃을 수 없어. 가방 안에 보조배터리가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사람이 조금 여유로워져.

핸드폰이 오래되면 배터리가 줄어드는 건 당연해. 배터리도 영원히 처음 상태일 수는 없으니까. 매일 충전하고, 매일 쓰고, 또 충전하고, 또 쓰고. 그걸 몇 년씩 반복했는데 멀쩡하길 바라는 것도 욕심일 수 있어. 배터리를 바꿀까, 새 폰을 살까, 그냥 참고 쓸까.

 

그냥 배터리 교체형이면 좋을 텐데. 예전처럼 뒤판 딱 열고, 다 닳은 배터리 빼고, 새 배터리 하나 끼우면 끝. 얼마나 깔끔해. 그때는 폰이 좀 두껍고 투박하긴 했어도 적어도 배터리가 닳으면 갈아 끼우면 됐고, 오래되면 새 배터리를 사면 됐어. 그런데 지금은 뭐야. 꽁꽁 닫아놓고, 배터리는 안에서 약해지고, 화면 오른쪽 위 숫자만 보면서 마음이나 졸이고 있다. 디자인이 얇아진 건 알겠어. 알겠는데, 배터리 12% 앞에서는 그런 얇고 깔끔한 모양새도 별 의미가 없어.

지금 스마트폰은 매끈하고, 틈도 없고, 손에 쥐면 잘 만든 물건이라는 느낌은 들어. 그런데 그만 사용자가 끼어들 자리가 줄어든 것도 사실이야. 예전에는 뒤판을 열고 배터리를 갈아 끼우는 정도는 직접 할 수 있는 일이었어. 지금은 배터리가 약해져도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충전기를 찾거나, 절전 모드를 켜거나, 서비스센터를 검색하는 정도야. 마음에 안 들어.

 

뭐, 핸드폰만 탓하기도 좀 그래. 폰을 너무 자주 보긴 하니까. 알림이 와서 보는 것도 아니야. 그냥 봐. 시간이 궁금해서 켰다가 메시지를 보고, 메시지를 보다가 인터넷을 보고, 인터넷을 보다가 영상 하나를 보고, 영상 하나가 둘이 되고 셋이 돼. 그러고 나서 배터리가 빨리 닳는다고 투덜대는 거지. 폰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어. 쉬지도 못하게 계속 깨워놓고 왜 이렇게 빨리 지치냐고 따지는 꼴이니까.

스마트폰은 계속 손에 들려 있고, 손에 들려 있으니 계속 켜게 되고, 계속 켜다 보니 배터리는 줄어들지. 당연한 건데도 막상 배터리가 닳으면 억울해. 이렇게 많이 썼나? 하고 생각하지만, 사용 시간을 보면 대개 답이 나와. 잠깐 봤다는 말이 하루 동안 열 번, 스무 번 반복되면 그건 더 이상 잠깐이 아니야. 잠깐들이 모이면 꽤 긴 시간이 되거든. 아주 성실하게 내 배터리를 갉아먹는 시간이 되는 거야.

 

앱들도 반성해야 해. 분명 꺼둔 줄 알았는데 뒤에서 뭘 그렇게 열심히 하고 있는 거야? 위치 정보 확인하고, 알림 보내고, 업데이트하고, 백그라운드에서 자기들끼리 난리가 났어. 내가 모르는 사이에 핸드폰 안에서 축제라도 열렸나 봐. 화면 밝기도 문제고, 블루투스도 문제고, 와이파이도 문제고, 위치 정보도 문제고, 다 문제야.

제일 짜증 나는 건 배터리 숫자가 사람 마음을 가지고 논다는 점이야. 100%에서 90%까지는 꽤 오래 버티는 것처럼 보여. 그래서 방심하게 만들어. 오늘 괜찮겠는데? 하고 생각하게 하지. 그런데 60% 아래로 내려가는 순간 갑자기 속도가 붙어. 55%, 48%, 39%. 숫자가 내려갈 때마다 기분도 같이 내려가. 20% 경고창이 뜨면 그때부터는 그냥 끝이야. 핸드폰을 쓰는 게 아니라 모시는 거야. 꺼지지 말아 주세요, 제발 조금만 더 버텨 주세요, 이런 마음이 된다고.

 

절전 모드를 켜면 조금 낫긴 해. 하지만 그때부터는 이상하게 폰이 폰 같지 않아. 화면도 어두워지고, 뭔가 내가 비싼 돈 주고 산 스마트폰을 일부러 멍청하게 만들어 쓰는 기분이 들어. 성능 좋다고 광고할 때는 언제고, 결국 밖에서는 배터리 아끼려고 최대한 아무것도 안 시키는 거잖아. 스마트폰을 샀는데, 제일 중요한 순간에는 스마트하게 쓰지 말아야 오래 간다는 게 참 웃기다. 고성능 기계를 사놓고 위기 상황에서는 얌전히 숨만 쉬게 하는 꼴이야.

그래서 가끔은 배터리 교체형 스마트폰이 그립다. 지금보다 성능은 부족했고, 디자인도 지금처럼 깔끔하지 않았고, 뒤판을 열면 플라스틱 느낌이 그대로 났지만, 적어도 배터리 문제 앞에서는 지금보다 덜 무력했어. 여분 배터리 하나 있으면 됐으니까. 충전기를 붙잡고 기다릴 필요도 없고, 보조배터리 케이블을 주렁주렁 달고 다닐 필요도 없었어. 지금 스마트폰은 훨씬 똑똑해졌는데, 사용자는 오히려 콘센트 앞에서 더 얌전해졌어. 이거 좀 이상하지 않아? 기술은 발전했는데 나는 왜 카페에서 자리 잡을 때 콘센트 위치부터 보는 사람이 된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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