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728x90
반응형

안녕하세요. 일요일의 21입니다. 왜 이 글을 쓰게 됐나? 요즘 챗GPT에 소설을 시켜보는 사람들이 많다. 지우학 느낌으로 써줘, 좀비 학교 배경으로 써줘 같은 요청 말이다. 그래서 문득 궁금해졌다. 정말로 챗GPT에 소설을 맡기면, 어느 정도까지 나올까?

아래는 실제로 챗GPT에 요청해서 나온 지우학 세계관 기반 단편 소설이다. 참고로 나는 ‘지금 우리 학교는’이란 작품의 경우 웹툰을 보다가 말았고, 드라마도 드문드문 보다시피 해서 구체적인 내용 전개나 설정 자체를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챗GPT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어느 수준까지 도달하는지 확인해 보고 싶었다.

원작 인물은 없고, 분위기만 차용한 완전 창작이다.

 

지우학 단편 - 3층 음악실의 끝

 

좀비 사태가 터진 지 이틀째, 학교는 이제 더 이상 학교가 아니었다. 사람 냄새 대신 철 냄새가 떠돌았고, 복도는 발자국보다 신음이 더 많았다. 나는 3층 음악실에서 막 문을 걸어 잠갔다. 창문 밖으로는 운동장에서 날뛰는 괴물들이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는, 이상한 박동처럼 요동쳤다. 내 이름은 지안. 반에서 그저 조용히 사진이나 찍던 애였다. 생존력 따위는 없었다.

음악실 안에는 나 말고 한 명이 더 있었다. 합주부 드럼 치던 애, 유현. 평소엔 말 한마디 안 섞었지만, 지금은 서로가 서로의 방패였다. 그는 창문 아래 웅크려 앉아, 드럼 스틱 대신 깨진 꽂이 파일을 손에 들고 있었다.

“저거… 우리 반 애들 맞지?”

운동장 끝에서 기괴하게 꺾여 달려오는 애들의 모습이 낯익었다.

“…맞아.”

 

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눈을 돌려도 귀는 닫히지 않아서, 창문 깨지는 소리만큼 날카로운 비명들이 계속 박혀왔다. 유현이 떨리는 숨을 내쉴 때마다 스틱 끝이 바닥을 치며 작은 '틱' 소리를 냈다. 음악실에 남아 있는 건 악기와 피 냄새와, 우리가 막 잃어버린 일상뿐이었다.

 

“지안, 너 카메라 아직 있어?”

그 질문에 웃음이 나왔다. 이 와중에 사진이나 찍자고? 하지만 그는 고개를 저었다.

“남는 배터리 있으면 플래시로 신호 보낼 수 있을까 해서… 혹시 누가 살아 있으면.”

난 가방을 뒤졌지만, 배터리는 없었다. 대신 깨진 트라이포드만 남아 있었다. 살아남기엔… 셔터도, 삼각대도 아무 쓸모가 없었다.

 

바로 그때, 음악실 밖에서 ‘쿵’ 소리가 들렸다. 문이 심하게 흔들렸다.
‘쿵’
‘쿵’

점점 더 강해졌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삼각대를 움켜쥐고 유현 옆으로 갔다. 우린 서로 눈만 마주쳤지만, 둘 다 알고 있었다. 이제 숨을 곳은 없다는 사실을.

문이 부서지려는 순간, 복도 끝에서 전혀 다른 소리가 들렸다.
사람 목소리.

“야! 이쪽으로 와!”

 

누군가가 괴물들을 다른 방향으로 유인하고 있었다. 발소리, 비명, 금속 긁히는 소리… 모든 소리가 뒤섞였다. 우린 순간적으로 문을 더 당겨 닫고, 안에서 꾹 눌러 붙였다.

잠잠해지기까지 정확히 17초. 짧았다. 그런데 지옥처럼 길었다. 유현이 조심스레 문 틈을 살폈고, 나는 창문 아래로 미끄러지듯 주저앉았다.

“지안… 우리 여기 오래 못 있어.”

그는 말하면서도 눈이 이미 문 바깥의 어둠을 향해 있었다. 도망가는 것도, 남아 있는 것도 모두 죽음과 비슷해 보였다.

 

마침내 결론은 하나였다.

“과학실까지 내려가자. 거기 창문 구조가 튼튼해.”

유현이 제안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는 음악실 문을 천천히 열고, 죽은 듯이 고요한 복도로 발을 내디뎠다.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아무도 없다’는 말은 곧 ‘어디에든 있을 수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계단을 내려가는 동안 숨은 얇게, 발소리는 더 얇게 만들었다. 복도 끝 교실 하나에서 뭔가 스치는 그림자가 보였다.  우린 바로 벽 뒤로 몸을 숨겼다.

“지안… 혹시 무서워?”
“당연하지.”
“…나도.”

그 작은 대답이, 그 순간엔 이상하게 사람을 버티게 해주는 힘이 됐다.

 

1층에 거의 도착했을 때, 갑자기 경고음 같은 비명소리가 학교 전체에 퍼졌다. 괴물들 특유의, 목구멍을 찢어 울리는 소리. 우린 동시에 뒤돌아봤다. 계단 위에서, 우리를 향해 달려오는 그림자가 하나.
피범벅, 비틀림, 광기.

“뛰어!”

유현이 내 손을 확 잡아끌었다.

우리는 복도를 내달렸다. 창문 너머로 낮은 겨울 해가 기울어 있었고, 먼지와 피 냄새가 섞여 있었다. 바닥에 쓰러진 의자 하나가 걸리며 나는 거의 넘어질 뻔했지만, 유현이 다시 나를 끌어세웠다.

“살아야 돼.”

그 말은 명령도, 약속도 아니었다. 그냥, 지금 이 상황에서 사람이 사람에게 건넬 수 있는 최소한의 온기였다.

과학실 문이 눈앞에 보였다. 우리는 동시에 손을 내밀었다.

“하나, 둘—”

문을 여는 순간, 어둠 속에서 무언가 우리를 향해 확 움직였다. 그리고— 철컥. 낯선 목소리.

“움직이지 마. 사람 맞아?”

우리는 숨을 몰아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제야 그 그림자가 형체를 드러냈다. 살아 있는 또 한 명의 학생. 그리고 그의 손엔 약품들, 붕대, 손전등까지 쥐어져 있었다.

그 순간, 처음으로… 지옥 같은 학교에 희망이라는 단어가 아주 조용히 들어왔다.

 

이번에는 소설만이 아니라, 챗GPT가 이야기를 얼마나 제대로 이해하고, 그걸 이미지로까지 풀어낼 수 있는지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앞서 만든 지우학 분위기의 단편 소설을 분석해서 그림을 그려달라고 요청해 봤다. 조건은 간단했다. 애니풍, 웹툰풍, 그리고 소설 속 핵심 장면을 살릴 것. 결과물은 의외로 꽤 정확했다.

3층 음악실이라는 폐쇄된 공간, 문밖에서 밀려오는 좀비들, 안쪽에서 서로 등을 맞대고 버티는 두 학생의 표정과 긴장감. 이야기 속에서 말로만 존재하던 장면이 하나의 컷처럼 시각화되면서, 이 소설이 웹툰의 한 장면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물론 세부 설정까지 완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텍스트 → 장면 해석 → 이미지 구성 이 흐름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점에서는 꽤 인상적이었다.

 

이번에는 소설 장면을 직접 주고, 그림을 그려달라고 요청도 해봤다. 어색한 것들도 있었다. 다만 프롬프트를 주고 재요청을 하면 딱 알맞게 수정해 줬다. 표정이 지나치게 밝거나, 분위기와 맞지 않는 연출이 들어가기도 했고 특히 말풍선 속 대사가 깨져 보이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다만 흥미로웠던 건, 프롬프트를 조금만 구체적으로 바꿔서 다시 요청하면 원하는 방향으로 꽤 정확하게 수정해준다는 점이었다.

위 사례에서도 결과물은 글의 긴장감에 비해 인물 표정이 너무 여유 있어 보여서 다시 요청했고, 대사가 어색하게 들어간 부분은 아예 말풍선 없이, 표정과 분위기만으로 표현해달라고 수정했다. 그렇게 몇 번 조정하고 나니, 소설 속 장면과 훨씬 잘 맞는 컷이 나왔다. 이 과정을 겪고 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프롬프트만 잘 다듬으면, 장면 분위기나 연출을 미리 시각적으로 확인해 보는 용도로는 꽤 유용하겠다는 생각이다. 콘티를 짜기 전 단계, 혹은 머릿속에만 있는 장면을 한 컷으로 시험해 보는 용도로는 충분히 써볼 만하겠다. 다만 챗GPT가 하는 일은 창작 그 자체라기보다, 창작 과정 중 일부를 빠르게 시험해 보게 해주는 쪽에 가깝다.

소설의 초안을 만들고, 그 장면을 이미지로 옮겨보며 분위기를 확인하는 일까지는 꽤 성실하게 해낸다. 하지만 어떤 장면을 살릴지, 어디서 긴장을 끊고 이어갈지,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버릴지 하는 창작의 몫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글이 그렇듯이, 그림도 마찬가지다. AI가 제시한 결과물은 참고 자료가 될 수는 있어도 최종 결과가 되지는 않는다. 결국 챗GPT는 이야기와 이미지를 대신 만들어주는 존재가 아니라, 창작자가 선택을 더 빨리, 더 많이 해볼 수 있게 도와주는 도구다. 그 정도 위치에 두고 쓰는 게 지금으로서는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오래 쓸 수 있는 방식인 것 같다.

그래서 결국 남는 건, 이야기를 끝까지 끌고 가는 힘은 어디에서 나오느냐는 질문이다. 장면을 잇고, 리듬을 조절하고, 독자가 어디에서 숨을 멈추게 할지를 판단하는 일은 여전히 사람의 감각에 의존한다. AI가 아무리 많은 선택지를 내놓아도, 그중 하나를 고르는 순간부터는 창작자의 책임이 된다. 이 글과 이미지 실험도 마찬가지였다. 챗GPT가 만들어준 초안과 그림은 출발선까지는 데려다줬지만, 어디로 갈지는 말해주지 않았다. 어쩌면 그게 가장 솔직한 역할인지도 모른다. 창작을 대신하지 않고, 창작자가 스스로 결정해야 할 지점을 더 또렷하게 드러내 주는 것.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정도의 거리가 좋다. AI는 도구로 두고, 글과 그림은 끝까지 사람이 책임지는 방식. 아마 이 균형이 무너지는 순간, 창작은 편해질지는 몰라도 재미는 사라질 것 같다.

소설을 대신 써주는 도구를 넘어서, 이제는 이야기를 읽고, 장면을 분석해서 그려주는 단계까지 챗GPT가 들어와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쯤 되니 궁금증은 하나로 정리된다.

이걸 사람이 어디까지 개입하느냐에 따라, 결과물의 완성도는 얼마나 달라질까? 아마 그 지점이, 앞으로 우리가 챗GPT를 쓰는 방식의 핵심이 될 것 같다.

728x90
반응형
댓글
최근에 달린 댓글
글 보관함
«   2026/03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최근에 올라온 글
Total
Today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