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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수요일의 21입니다. 해질 무렵, 바람은 조금 서늘했고 햇살은 따뜻했다. 마치 계절이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려는, 그 애매한 경계선 위에 내가 서 있는 것 같았다. 손에 쥔 카메라는 니콘 ZF. 처음 봤을 때, 그 클래식한 디자인에 반해버렸다. 무언가 오래된 것 같지만, 동시에 너무나 선명한 이질감. 시간을 담는 도구가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니.
6월의 첫날, 여름은 조용히 스며들었다. 바람은 아직 봄의 향기를 머금고 있었지만, 햇살은 분명히 여름이었다. 그런 오후, 나는 니콘 ZF를 들고 길을 나섰다. 클래식한 셔터음 하나로 마음이 차분해지는 카메라. 찍기 위해 걷는다는 건 어쩌면, 보기 위해 멈추는 일일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그날이 바로 6월 1일, 일렉트로마트였다. 카메라 매대 앞에 서서, 잠깐 고민은 했다. 소니 A7C2랑 니콘 ZF.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고민이지, 갈등은 아니었다. 니콘 ZF를 샀던 당시, 분명 A7C2도 후보 중 하나였다. 하지만 막상 매장에서 실제로 보니, 내가 왜 소니를 망설였는지 바로 체감됐다. 각지고 단정한 디자인, 성능은 좋아도 마음은 끌리지 않았다. 뭐랄까 도시락 같았다. 기능은 알차지만, 손에 쥐었을 때 설렘은 없었다.
반면, ZF는 달랐다. 손에 쥔 순간, 기계가 아니라 감정이 느껴졌다. 직관적이고 묵직한 그 감촉. 낡은 듯 새로운 디자인. 그것만으로도 충분했다. 그래서 니콘 ZF를 샀다. 셔터를 누르기 전, 나는 한참을 뷰파인더 속 풍경을 바라봤다. 저 멀리 노을이 물들고, 누군가는 조용히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을 담아내는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찰나라는 단어가 실재하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갖고 싶었던 카메라는 솔직히 많았다. 후지필름도 그중 하나였다. X100VI나 X-T5. 카메라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눈길을 줬을 법한 디자인의 카메라다. 특히 X100 시리즈는 이상할 정도로 갖고 싶게 생겼다. 주머니에 쏙 들어갈 것 같은 크기는 아니지만, 클래식한 외형, 그리고 늘 따라붙는 말이 있다. 바로 색감 미쳤다는 거다. 비록 X100VI는 렌즈 교환이 안 되는 똑딱이임에도 불구하고, 나조차도 갖고 싶어질 만큼 매력적인 카메라다.
처음부터 니콘 ZF를 갖고 싶었던 건 아니다. 사실은 그날 일렉트로마트에 X100VI나 X-T5가 있었다면, 어쩌면 난 지금 후지 유저였을지도 모른다. 왜냐고? X100VI는 정가만 보면 니콘 ZF보다 싸다. 하지만 현실은? 정가는 참고용일 뿐이다. 정작 물건이 없으니, 중고든 미개봉이든 300만 원 이상에서 거래되고 있었다. 심지어 400만 원을 넘긴 매물도 봤다. 예약 구매로 정가에 살 수는 있지만, 기약이 없다.
이쯤 되면 카메라가 아니라 희귀템이다. 거의 포켓몬 카드 수준. 심지어 전작인 X100V, X100F도 덩달아 가격이 오르기 시작했다. 그래도 X100VI는 여전히 내 위시리스트 상단에 있고, 나도 언젠가는 그 카메라로만 찍은 사진 하나쯤은 해보고 싶다는 환상 같은 걸 품고 있다. 거리 사진. 혹은 여행지 스냅. 화려한 기능은 없어도, 뭔가 감성이 묻어나는 사진. 그런 걸 찍을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다시 니콘 ZF.
그렇게 여름을 찍던 카메라는, 어느덧 가을을 지나고 있었다. 파일 넘버가 쌓일수록, 시간도 덧없이 흘러간다. 그날 다시 셔터를 누른 건, 붉게 물든 단풍 아래였다. 햇살은 나뭇잎 사이로 비쳤고, 그림자는 길게 늘어졌다. 누군가는 이걸 가을이라고 불렀지만, 나에겐 그냥 또 하나의 기억이었다. 빛이 좋아서 찍은 사진은 많지만, 이 사진은 빛과 바람, 그날의 냄새까지 담겨 있는 것 같다. ZF는 그런 사진을 잘 담는다. 흔들리지 않는 손맛, 감성적인 톤, 그리고 한 발짝 멀어진 시선. 시간은 항상 지나가지만, 사진은 때로 그 시간을 거슬러 돌아오게 만든다. 6월의 햇살도, 11월의 단풍도. 모두 카메라 안에 차곡차곡 쌓여 간다.
그러니까, 이 사진도 그중 하나다. 어느 오후, 무심코 셔터를 눌렀던 장면. 빛이 좋아서, 그저 나무가 예뻐서, 아니면 그냥 뭔가 찍고 싶어서. 이유는 늘 명확하지 않다. 어쩌면 사진이란 원래 그런 거다. 기억하려고 찍는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은 그때 느꼈던 기분을 다시 꺼내 보고 싶어서 찍는 게 아닐까. 눈으로 본 풍경이 아니라, 그날의 온도와 분위기, 그 순간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서.
그리고 같은 날, 다른 풍경. 이번엔 도시의 윤곽이 멀리 배경을 채운다. 흰색 아파트 단지가 파란 하늘 아래 줄지어 있고, 그 아래엔 늦가을 햇살을 머금은 듯한 나무들이 정렬하듯 서 있다. 왼편엔 뾰족한 하얀 천막 지붕. 도심 속에서도 계절은 멈추지 않는다. 이질적일 만큼 푸른 하늘이 사진의 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지만, 그 아래에는 분명히 계절이 흘러가고 있다. 그 모습이 마치, 도시 안에서도 마음만 먹으면 계절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다. 카메라를 들지 않았더라면, 그냥 무심코 지나쳤을지도 모른다. 바쁜 일상에 숨어 있는 이 작은 가을은 카메라가 있었기에 눈에 들어온다. 그리고 기록된다. 사진이란 건, 시선을 담는 일이기도 하다. 아무리 좋은 카메라라도, 결국엔 찍는 사람이 어디를 바라보는가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니까. 니콘 ZF는 그 시선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사진이란, 어떤 연속된 흐름을 자를 수 있는 도구다. 그리고 지금 그 흐름은 가을의 끝이다. 사진 속 도시의 얼굴은 여전히 날카롭고 단정하지만, 그 아래 풍경은 조금 다르다. 잔디밭 위에는 따스한 햇살이 내려앉고, 나무들은 여전히 가을의 색을 붙잡고 있다. 도시와 계절이 나란히 서 있다. 서로 섞이지 않지만, 이상하리만치 잘 어울린다.
한 장의 하늘. 너무 맑아서, 오히려 조금은 멍해졌던 그 순간. 파란 하늘이란 게 이렇게 넓고, 이렇게 조용할 수 있다니. 그날의 하늘은 그저 높거나 깨끗한 수준이 아니었다. 보는 사람의 생각까지 비워내 버리는 듯한, 묘한 침묵을 품고 있었다. 카메라를 들고 바라보다가도, 어느 순간 아무것도 찍지 않고 그냥 올려다보게 되는 하늘.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느껴지는 풍경이었다.
최근에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다 뽀개버리고 싶다. 지금 어쩌다 보니 하는 일이 있는데 안 되면 다 내 탓이다. 이래서 안 하려고 했던 건데. 여하튼 이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두 개다. 떠나는 것과 돈을 많이 버는 거다. 한 200억 원 정도. 아 또 다른 방법으로는 사진을 찍어서 다스리는 거다. 사진을 찍을 때 기분이 좋거든. 사진 찍어서 올렸는데 조회 수가 좋다? 그러면 더 좋지. 그만큼 내 목표에 가까워진다는 거니까.
구름은 그저 곁가지처럼 떠 있었고, 주인공은 명백하게 파랑이었다. 단조로워 보일 수도 있지만, 이상하게 복잡한 감정을 건드렸다. 아무 일도 없었던 날처럼 보이는 이 사진에는 사실, 너무 많은 생각이 담겨 있다. 그중 절반은 말이 안 되고, 나머지 절반은 말로 할 수 없었다. 그래서 셔터를 눌렀다. 어떤 생각도 담지 않고, 그저 좋다는 마음 하나로. 사진이라는 건 때로는 그렇게 아무 이유 없이 찍혀야 한다. 말도 안 되는 파랑을 눈으로만 담기엔 아깝다고 느껴질 때, 카메라는 조용히 그 이유가 되어준다. 그리고 나중에 이 사진을 다시 꺼내 보게 될 것이다. 이유도 없이, 그냥 하늘이 보고 싶어서. 그날의 기분이 그랬던 것처럼, 나중에도 이유 없이 그 파란색이 필요할 날이 있을 테니까. 구름은 잊힐지 몰라도, 이 파랑은 오래 기억날 것이다. ZF로 찍은 하늘은, 그냥 파란 하늘이 아니다. 그건 마음 한쪽에 남아 있는 여백이다. 그리고 그 여백이 있다는 사실이, 괜히 위로가 된다.
그리고 또 한 장, 살짝 초점이 흐려진 사진. 흔히 말하는 실패작일 수도 있지만, 가끔은 이런 흐림 속에서 더 많은 감정이 스며든다. 선명하지 않아서 오히려 진심이 보이는 순간. 앞의 나무는 겨우 몇 잎 남긴 채 가지를 드러내고 있고, 그 뒤로는 빛을 통과한 나무들이 마치 화선지에 물든 잉크처럼 번져 있다. 초점이 나간 만큼, 감정은 더 또렷하게 다가온다. 정확히 어디를 찍으려 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그 순간 내가 멈췄다는 것. 무언가에 마음을 빼앗겼고, 셔터를 눌렀다는 사실이다. 그러고 보면 이 사진 속 나무들도 참 묘하다. 잎은 거의 떨어졌지만, 그 나머지가 오히려 더 선명하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다는 걸 이토록 조용히 알려주는 풍경도 없다. 어떤 날은 이런 비워짐이 더 많은 걸 말해준다. 가득 채워진 풍경보다, 텅 빈 나뭇가지 사이로 스며드는 빛 한 줄기가 더 길게 남는다. 이건 아마 가을의 끝도, 겨울의 시작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다. 뚜렷하지 않아서 오히려 기억에 남는, 계절의 공백 같은 시간. 그리고 나는 그 시간의 틈을, 흐린 초점 속에 눌러 담았다. 그렇게 오늘도, 찰나라는 이름의 영원을 기록한다. ZF의 셔터음과 함께.
맑고 푸른 하늘 아래, 정면에는 키 큰 침엽수들이 일렬로 서 있고 그 앞에는 낙엽이 진 활엽수들과 아직 붉은색 단풍이 남아 있는 나무들이 섞여 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하늘이었다. 말도 안 되게 푸른 하늘. 그저 그 자체로 완벽했다. 사진을 찍는 이유 중 하나가 빛이라면, 또 다른 하나는 분명 하늘이다. 유난히도 푸르렀던 그날, 하늘은 그저 위에 있는 게 아니라 나무 전체를 감싸는 것처럼 느껴졌다. 파란 하늘은 늘 기분을 들뜨게 한다. 하지만 그날의 파랑은 조금 달랐다. 뜨겁지도, 가볍지도 않고, 묵직하게 가라앉은 듯한 파랑. 그 색은 풍경을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으로 만들어줬다. 나무는 그림자 속에 서 있었고, 잔디밭엔 노을이 번지듯 퍼졌지만, 시선은 자꾸 위로 갔다. 단순히 푸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 푸름 안에 무언가 묘하게 맑은 기분이 있어서다.
도시 풍경은 늘 복잡하다. 간판, 창문, 광고, 사람.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하늘이 너무 맑아서, 오히려 배경이 도시를 정리해 준 것 같았다. 빽빽한 정보와 구조물 위로 얹힌 그 푸름은, 마치 이 도시도 한 장의 엽서가 될 수 있다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특히 저 유리 피라미드는 햇살을 받아 유독 반짝였다. 도시의 한가운데서도 투명함이 있다는 걸 보여주는 듯했다. 번잡함과 조용함이 공존하는 장면. 그 위로 지나가는 작은 비행기 하나. 정말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작았지만, 그 작은 점 하나조차도 이 맑은 하늘 덕분에 선명하게 보였다. 맑은 하늘은 사소한 것까지도 의미 있어 보이게 만든다.
어디서부터였는지 모르게 조용해진 공간. 발밑은 푹신한 솔잎이 깔려 있고, 양옆으론 키 큰 소나무들이 줄지어 서 있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길을 따라 안쪽으로 이어지고, 그 끝엔 무엇이 있을지 궁금해진다. 하지만 이 길은 목적지가 아니라, 걷는 자체로 충분한 길이다. 햇살은 나뭇가지 사이로 조심스럽게 내려앉았고, 바람은 그사이를 살며시 스쳤다. 뭔가를 찍겠다는 마음보다, 그냥 한참을 바라보게 되는 숲이었다. 카메라를 들고 있었지만, 사진은 그저 부수적인 결과물 같았다. 중요한 건 내가 이 길 위에 서 있었다는 사실. 세상의 소음이 멀어지고, 오로지 바람 소리와 나뭇잎의 떨림만이 귀를 채우는 시간.이 사진이 마음에 드는 이유는 특별한 장면이 없어서다. 누구나 지나칠 수 있는 평범한 숲길, 그게 전부다. 하지만 그런 평범함이 때론 마음을 가장 오래 머물게 한다. 아무 생각 없이 걷다가, 문득 멈추게 되는 순간. 셔터를 누르기 위해서가 아니라, 멈추고 싶어서 멈추는 장면. 그게 이 사진의 진짜 피사체다.
셔터를 눌렀다. 특별한 구도가 아니었다. 평범한 도시 한복판의 시계 하나. 그런데 그 배경이 너무 파랗고, 너무 조용해서,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시간은 항상 우리를 재촉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아무 일 없는 오후의 하늘이 모든 걸 무효로 만들어준다. 지금이 몇 시인지보다, 지금 이 순간이 어떤 기분인지가 더 중요해지는 그런 날이었다.
시간은 멈추지 않는다. 그건 시계가 증명해 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 하늘은 아무것도 몰랐다는 듯이 여전히 푸르기만 했다. 도심 한가운데, 유난히도 맑은 하늘 아래 시계 하나가 우뚝 서 있었다. 3시 50분을 가리키고 있는 바늘은 정확했지만, 그 순간 내 마음은 느려지고 있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나는 시간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날, 이 시계가 더 인상 깊었다. 움직이는 건 바늘뿐인데, 멈춰 있는 건 나 같았다. 도시의 분주함 위에 얹힌 무심한 푸름. 그 위에서 시계는 그저 묵묵히 흘러가는 시간을 보여줄 뿐이다. 아무도 눈치채지 못한 채, 세상은 조금씩 지나가고 있었다.
나무는 붉게 물들었고, 하늘은 말도 안 되게 파랬다. 그리고 그 아래, 한 사람이 천천히 걷고 있었다. 이 계절은 정말 사람을 조용히 만든다. 나무도 말이 없고, 길도 소리 없이 이어져 있다. 가을은 늘 무언가를 떠나보낸 자리에 찾아온다. 풍경은 아름답지만, 그 아름다움 속엔 늘 약간의 쓸쓸함이 묻어 있다. 그래서인지, 이 장면은 매우 조용해 보였다. 단지 누군가의 뒷모습일 뿐인데, 그 안에는 많은 감정이 스며 있었다. 하지만 동시에, 카메라를 든 손은 잠시 멈칫했다. 뒷모습이라도, 누군가가 담긴 사진에는 항상 책임이 따라온다. 사진을 찍는다는 건, 타인의 시간을 훔치는 일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항상 조심스럽다. 좋은 장면을 만났다고 해서, 모든 것이 내 기록이 되어도 괜찮은 건 아니니까. 이 장면은 다행히 인물이 멀리 있고, 얼굴도 보이지 않지만, 그럼에도 사진을 공유하거나 게시할 때는 늘 한 번 더 생각한다. 초상권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법적인 걸 넘어선다. 타인의 존재를 존중하는 태도, 그게 사진을 찍는 사람에게 더 필요한 감각 아닐까.
당당한 자세. 날카롭게 세운 귀와 휘어진 꼬리, 입을 벌린 표정은 위엄을 드러내지만, 그 안에 살짝 묻은 익살스러움은 숨길 수 없다. 왠지 모르게 뭐, 너도 좀 힘들었지? 하고 말을 걸어줄 것 같은 표정이다. 전통 건축물 앞에 자리 잡고 있지만, 보는 이의 기분을 살짝 풀어주는 그런 존재. 누군가는 지나치지만, 누군가는 멈춰 바라보게 되는 조용한 수호자다. 풍기는 분위기는 묘하게 따뜻하다. 햇살이 옆에서 부드럽게 스며들며 돌결을 따라 퍼지고, 그 조각 하나하나가 정성의 흔적으로 느껴진다. 이건 그냥 만들 수 없는 조형이다. 누군가의 시간과 손끝이 누적된 결과다. 이 사진이 좋은 이유는 사람은 없다. 초상권 걱정도, 누군가의 동의를 받을 필요도 없다. 그저 묵묵히 서 있는 석수 하나. 아무 말도 하지 않지만, 모든 걸 알고 있는 듯한 얼굴. 찍히는 걸 꺼리지도, 자기 모습을 감추지도 않는다. 요즘같이 누굴 찍기조차 조심스러운 세상에서 이처럼 편안한 피사체도 드물다.
해가 막 넘어가기 직전, 붉게 타오른 나무들은 마치 마지막 인사를 건네는 것처럼 보인다. 빛은 점점 낮아지고, 그림자는 길어진다. 그리고 바로 그 시간대의 흔들림 없는 순간을 각각의 사진이 담고 있다. 비슷해 보여도 셔터를 누른 순간마다 감정이 다르다. 한 장 남기고 지울까도 했는데, 아까웠다. 최고의 한 장만을 남기는 게 아니라, 비슷한 여러 장 속에 담긴 감정의 농도를 함께 간직하는 일. 그래서 이 장면은 셋 다 있어야 한다.
이건 마치 가을이 마지막으로 손을 흔드는 장면 같았다. 너무 뜨겁지도 않고, 너무 덤덤하지도 않은 딱 그 중간. 빛이 나뭇잎 하나하나에 마지막 인사를 건네듯, 부드럽게 안겨 있었다. 이 사진은 계절이 색으로 말을 거는 순간을 그대로 담았다. 가까이서 보면 더 잘 보인다. 잎마다 스며든 노을빛. 무언가가 끝나간다는 것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할 수 있을까. 붉지도 않고, 노랗지도 않고, 주황도 아닌 그 애매한 색.
어쩌면 가을이라는 단어가 아니라, 그 단어가 되기 직전의 빛이다. 하늘은 여전히 푸르고, 그 푸름 덕에 나뭇잎의 색은 더 또렷해졌다. 파랑과 주황이 이렇게 잘 어울릴 수 있다는걸, 사진을 찍고 나서야 다시 실감했다. 니콘 ZF는 이 미묘한 대비를 너무도 자연스럽게 포착해 냈다. 색을 꾸미지 않고, 감정을 더하지 않아도 되는 상태. 말하자면, 있는 그대로 감성적인 장면이다. 이 사진은 설명보다 감탄에 가까운 기록이다. 무언가를 의도하거나, 구도를 계산해서 찍은 게 아니다. 그저, 너무 예뻐서. 정확히 말하자면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빛은 그렇게 찰나에 머물렀고, 나는 그걸 셔터로 눌러 붙잡았다.
카메라는 도구다. 하지만 때로는 그 도구가 감정이 되고, 영감이 되며, 나를 움직이는 동력이 된다. 내가 ZF를 좋아하게 된 것도 그래서다. 그냥 기능이 좋아서가 아니다. 나를 조금 더 느긋하게 만들고, 조금 더 사색적으로 만들어줬기 때문이다. 사진은 완벽할 필요는 없다. 다만, 그 순간의 공기를 기억할 수 있다면, 그건 충분히 좋은 사진이다. 니콘 ZF는 그런 기억을 담기에 아주 적절한 카메라다. 너무 날카롭지 않게, 적당히 부드럽고 따뜻하게. 나는 오늘도 사진을 찍는다. 아니, 기억을 저장한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어쩌면, 사진을 잘 찍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내가 좋아하는 카메라를 들고, 내가 좋아하는 빛 아래 서 있는 것. 그리고 가끔, 굳이 찍지 않아도 되는 순간을 바라보는 것.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장면이 있다는 걸 알아가는 일. 니콘 ZF는 나에게 그걸 가르쳐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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