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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토요일의 21입니다. 니콘 ZF를 들인 지도 이제 곧 1년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첫눈에 반해 샀다. 성능 같은 건 나중 문제였다. 클래식한 외형, 정숙한 셔터음, 다이얼을 만지는 촉감이 전부 좋다. 이게 사진을 잘 찍는 도구인지 아닌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디자인이 끌렸다. 그저 예뻐서 샀다. 처음 끌렸던 건 니콘이 아니었다. 후지필름이었다. 정확히는 X-T5나 X100VI 같은 감성의 정수 같은 모델들. X-Pro 시리즈도 예외는 아니었다.

필름 카메라를 연상시키는 외형, 그리고 후지만의 색감으로 사진을 찍고 싶었다. 사진을 찍는 도구라기보단, 들고 다니기만 해도 있어 보이는 무언가였다. 문제는 그 예쁜 카메라들을 구할 수가 없었다는 거다. X100VI는 출시되자마자 증발했고, X-T5는 다음 주에 들어온다는 말만 몇 달째. X-Pro는 그냥 구경도 못 했다. 중고 매물은 정가보다 비싸고, 그 돈 주고 살 바에는 다른 거 사고 말지.

그렇게 좌절할 즈음, 한 매장에서 니콘 ZF와 마주쳤다. 후지를 기다리다 지쳐가던 어느 날, 일렉트로마트에서 니콘 ZF를 봤다. 말 그대로 마주쳤다는 표현이 딱 맞는다. 진열대 한쪽에 조용히 놓여 있던 그 녀석을 보는 순간, 어쩐지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손에 들어보니 무게감도 좋고, 외형은 말할 것도 없었다. 누군가는 그립감이 불편하다고도 하던데, 나는 오히려 이 얇은 그립이 마음에 들었다. 그립감이 아주 좋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카메라의 촉감은 날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 자리에서 바로 데려왔다.

팔랑귀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니콘 ZF를 샀던 바로 그날 아침까지만 해도 소니 A7C2 후기를 보며 진지하게 고민 중이었다. 살까, 말까를 수십 번 되뇌며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까지 돌리고 있었으니까. 그런데 막상 매장에 가서 실물을 보니, 내가 왜 소니를 망설였는지 단번에 알겠더라. A7C2는 분명 좋은 카메라다. 가볍고, AF 빠르고, 영상까지 훌륭하다. 그런데 이성적으론 이해가 되는데, 감성적으로는 아무런 울림이 없었다.

반면, 바로 옆에 있던 니콘 ZF를 보는 순간 마음이 확 기울었다. 디자인, 질감, 셔터음 모두가 나한테 말을 거는 것 같았다. 참고로 캐논도 진열돼 있었는데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날의 선택지는 실은 하나뿐이었다. 일렉트로마트에는 캐논, 니콘, 소니만 있었다. 후지필름이나 파나소닉까지 진열돼 있었다면, 아마 그 자리에서 한참을 더 고민했을 것이다. 처음 내가 원했던 건 후지필름이었다. 특유의 필름 시뮬레이션을 꼭 한번 써보고 싶었고, 니콘 ZF를 구매하던 그날까지도 머릿속에 계속 후지의 잔상이 맴돌았다. 혹시 후지가 나았던 건 아닐까? 그런 생각이 잠깐씩 스치곤 했다. 하지만 막상 ZF를 직접 써보니, 이 녀석도 만만치 않다. 기본 색감도 충분히 감성적이고, 무엇보다 결과물에서 느껴지는 필름틱한 분위기가 의외로 잘 살아 있다. 후지처럼 필름 시뮬레이션은 없지만, 니콘만의 색감과 톤, 그리고 ZF의 외형이 주는 분위기가 그 빈자리를 꽤 괜찮게 메워준다.
 

니콘 ZF로 찍은 사진들이다. 사실 처음에 이 예쁜 카메라로 예쁜 사진이 나올까? 내가 잘 다룰 수 있을까? 괜히 샀나? 하는 걱정도 있었다. 디자인이 예쁘다고 해서 성능까지 보장되는 건 아니니까. 괜히 예쁜 쓰레기가 되는 건 아닐까, 그런 불안감도 솔직히 있었다. 하지만 결과물을 하나둘 꺼내볼수록, 그런 걱정은 점점 사라졌다. 한낮의 햇살, 파란 하늘, 그리고 그 위를 가르는 노란 크레인. 이 사진을 찍었을 때는 그저 지나가다 시선을 빼앗긴 순간이었다. 결과물을 확인해 보니 하늘의 부드러운 색감, 미세하게 번지는 구름, 금속 구조물의 노란 색감까지 모두 그대로 담겨 있었다. JPG, 무보정이다.
 

셔터를 눌렀고, 결과물은 대체로 만족스러웠다. 굳이 RAW로 찍지 않아도 될 만큼, ZF의 JPG는 이미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후지필름처럼 사진에 그레인 효과를 얹는 기능은 없다. 그 특유의 필름 입자, 감성을 덧입힌 듯한 그 마무리는 ZF에는 없다. 그런데도 결과물은 마치 필름 카메라로 찍은 듯했다. ZF는 기본 색감 자체가 충분히 감성적이다. 톤은 차분하고, 색은 진득하다. 때로는 아련하게, 때로는 묘하게 따뜻하게. 필름 시뮬레이션은 없지만, ZF는 그 자체로 필름 느낌이 나는 카메라였다.
 

잔잔한 개천 위, 오리 두 마리가 느긋하게 유영하고 있었다. 햇살이 닿은 수면은 얇게 반짝였고, 주변의 돌과 물살은 자연스럽게 풍경 속으로 녹아들었다. 특별할 것 없는 풍경이지만, 사진으로 꺼내 보니 은근한 정적과 고요함이 느껴진다. 두 번째 사진은 거의 우연에 가까웠다. 교각 밑을 걷던 중, 갑자기 시야 한쪽에서 새 한 마리가 지나갔다. 셔터를 누른 건 거의 반사적인 반응에 가까웠다. 순간 포착, 조리개도 셔터도 세팅도 안 봤다. 색감은 차분하고, 디테일은 뭉개지지 않는다.

게다가 이 사진은 크롭한 상태다. 생각보다 훨씬 가까이에서 찍은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론 꽤 거리가 있었다. 그런데도 해상력, 괜찮다. 결과물 품질, 준수하다. 사진을 확대해도 흐트러지지 않고, 디테일이 살아남는다. 이럴 때 이래서 사람들이 풀프레임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니콘 ZF는 고화소 카메라는 아니다. 같은 시기에 고민했던 소니 A7C2보다 화소는 낮다. 성능만 보면 분명히 소니 쪽이 한 수 위처럼 보일 수도 있다. 그런데 막상 찍어보고, 크롭해 보고, 실제 결과물을 보면 디테일 표현력, 색감, 질감 쓸만하다 못해 준수하다.
 

어느 언덕 위에서 바라본 동네의 풍경이다. 특별한 장소도, 대단한 구도도 아니다. 낡은 건물, 얽힌 전선, 멀리 보이는 아파트와 숲과 산. 그냥 매일 지나치는 도시의 얼굴일 뿐이다. 하지만 니콘 ZF로 담아내니, 이 평범한 풍경에서도 어딘가 묵직한 정서가 느껴졌다.
 

이 사진은 화성에 올라서 찍은 사진이다. 아마 화성에 올라가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이 구도로 셔터를 누르게 될 것이다. 사실 나는 화성에 갈 때마다 이 자리를 지나칠 수가 없다. 매번 같은 구도, 비슷한 풍경인데도 이상하게 셔터를 누르게 된다.

성곽 틈 사이로 내려다본 도심은, 현재와 과거가 한 프레임 안에 공존하는 느낌을 준다. 돌담 너머로 보이는 고층 아파트, 차량이 뒤엉킨 도로, 그 앞의 한옥 식당 지붕 모두 한눈에 들어왔다. 기록이지 뭐. 공사 중인 저 건물도 언젠가는 완공될 테고, 풍경은 또 바뀔 것이다. 그때 가서 다시 찍으면, 오늘 찍은 이 사진은 어느새 예전 모습이 돼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니까 지금의 이 구도가, 이 거리감이, 이 흐릿한 공기까지 모두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만든다. 언제나 같아 보여도, 사실은 매번 조금씩 다른 순간이니까.
 

성곽 틈 사이로 보이는 풍경은 여전히 도심의 일상 그대로지만, 프레임이 좁아지자 시선도 훨씬 더 집중된다. 좁은 틈 사이로 고개를 내민 듯한 시점, 골목길과 낮은 건물들, 그리고 멀리 보이는 회색빛 아파트까지 도시의 결이 오롯이 담겼다. 사실 그냥 찍고 싶어서 셔터를 눌렀는데, 찍고 보니 누군가 길을 걷는 모습도 함께 담겨 있었다. 그 덕분에 사진에 약간의 생활감 같은 게 생겼다. 다행히 얼굴은 보이지 않아서 조심스럽게 올려본다. 초상권이라는 단어는 늘 무섭지만, 일상을 기록하는 입장에서는 참 애매하다. 이런 사진은 잘 나왔다기보다, 그냥 놓치고 싶지 않아서 찍은 사진에 가깝다.
 

어쩌면 중요한 건 스펙도, 브랜드도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결국 남는 건 그 순간 셔터를 누르게 만든 무언가, 그리고 그걸 담아낸 결과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니콘 ZF는 내가 가장 많은 순간을 함께한 친구이자, 기록자였다.

 

[이모저모] 카메라, 사진, 블로그 - 니콘 ZF로 찍고 글 쓰는 이유

안녕하세요. 화요일의 21입니다. 니콘 ZF로 찍은 사진들을 올리면서 참 많이 고민하게 된다. 사진을 이렇게 찍을까, 저렇게 찍어볼까 하는 것은 당연하고, 색감은 무슨 색감을 쓸까도 고민되는데,

ashitaka21.tistory.com

이 글을 올릴까 말까 고민했지만, 결국 올리기로 했다. 참고로 타 기종 언급은 일부러 넣었다. 검색 유입 때문이다. 이 글은 니콘 ZF에 관한 이야기지만, 후지 X-T5, X100VI, 소니 A7C2 같은 카메라를 써야 누군가는 검색해서 들어오니까. 결국 읽히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기록도 묻히는 게 현실이다. 그러니 약간의 키워드 장사는 참작해 주셨으면 한다. 저번에 썼던 글인데, 언급 안 해서 그런지, 조회 수가 너무 안 나왔더라. 순수하게 니콘 ZF 이야기만 해보겠다고 제목도, 본문도 깔끔하게 썼는데... 돌아오는 건 조용한 조회 수 그래프였다. 글은 나름 진심이었고, 사진도 신경 써서 고른 거였지만, 검색 결과에는 잘 걸리지 않았고, 결국 묻혔다. 그래서 이번엔 솔직하게, 약간 계산적으로 써본다. 기왕 기록하는 거면, 누군가와 공유되고 읽히길 바라는 건 당연한 마음이다. 어차피 이 카메라로 내가 본 걸, 느낀 걸 남기기 위해 쓴 글이니까. 타 브랜드 이름 몇 개 섞는다고 이 글의 진심이 가벼워지는 건 아니라고 믿는다. 그러니 혹시라도 그 부분이 거슬렸다면, 그냥 그런 이유가 있었다고만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그리고 혹시 이 글을 검색해서 읽게 된 당신이 있다면, 환영한다. 어쩌면 당신도, 나처럼 예쁜 카메라 하나쯤,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사람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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