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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월요일의 21입니다. 현재 쓰는 폰트는 한글재민체 6.0이다. 일단 니콘 ZF에 대한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좋은 카메라다. 문제는 카메라가 아니라, 그걸 들고 있는 내가 문제다. 어느덧 니콘 ZF를 산 지도 1년이 지났지만, 정작 사진을 찍은 건 몇 장 안 된다. 1,000장을 넘기긴 했지만, 필름 카메라 기준으로 치면, 고작 10장도 안 된다고 보면 된다. 필름 카메라는 한 장 한 장 신중하게 찍어야 하지만, 디지털카메라는 찍고 나서 바로 확인하고, 맘에 안 들면 지워버리면 그만이다.
그러다 보니 셔터를 누르는 손끝에 긴장감이 없다. 대충 찍고, 대충 넘기고, 나중에 정리하다가 다 지워버리는 식이다. 그러니 애초에 뭔가 남는 게 없다. 예전에 한 롤에 36장이란 제한이 있어서 그 안에 어떤 이야기를 담아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냥 ‘찍고 보자’라는 마음뿐이다. 결국 사진이라는 결과물도, 그걸 찍던 순간도 가볍게 흘러가 버린다. 그렇게 ZF는 점점 책상 위 소품이 되었고, 내겐 ‘좋은 카메라를 갖고 있다’라는 만족감만 남았다. 하지만 그 만족감은 곧 자기합리화가 되고, 다시 무기력으로 돌아온다. 좋은 카메라가 있는데 왜 안 찍지? 그 질문이 떠오를 때마다 카메라를 꺼내 들지만, 몇 장 찍고 나면 또 원래 자리에 조용히 놓여 있다. ZF는 늘 준비돼 있지만,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된 듯하다.
그런 날이 반복되다 보니, ZF는 이제 마치 운동 다짐처럼 느껴진다. “이번 주말에 꼭 나가서 찍어야지.” “날씨 좋다, 카메라 챙겨야겠다.” 그렇게 마음만 앞서고, 현실은 귀찮음과 변명으로 덮인다. 장비 욕심에 들떠서 렌즈나 카메라도 몇 개 더 사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 찍힌 건 늘 같은 골목, 같은 풍경, 그리고 비슷한 후회다.
가끔은 괜히 카메라 탓을 해보기도 한다. “너무 커서 들고 다니기가 불편해.” “목에 걸고 다니면 시선이 부담스러워.”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ZF는 예쁘고 가볍고 손맛까지 좋은 카메라다. 그냥 내가 아직, 뭔가를 진심으로 찍고 싶어 하지 않는 거다. 아니면 아직 ‘왜 찍는지’를 모르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 결국 사진은 장비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가짐의 문제라는 뻔한 결론에 다시 도달한다. ZF는 잘못이 없다. 잘 찍고, 잘 잡아주고, 늘 기다려준다. 문제는 주인이 계속 뻘쭘하게 만든다는 것뿐이다. 어느 날, 괜히 카메라를 들고 나갔다. 딱히 찍을 게 있는 것도 아니었고, 그냥 뭐라도 하나 남겨야 할 것 같아서. 그렇게 걷다가 다리 밑에 멈췄다. 그늘지고 삭막한 콘크리트 구조물, 반복되는 기둥과 보, 철망 너머 텅 빈 벤치들. 별거 없어 보였지만, 괜히 구도가 맞을 것 같아서 셔터를 눌렀다. 그런데 찍고 나서 보니, 묘하게 마음에 들었다. 삐뚤지 않게 떨어지는 대칭, 구조물 사이로 보이는 거리감, 울타리와 벤치의 질서. 사실 이 정도면 나름 신경 쓴 구도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ZF가 잘 잡아준 거다. 나는 그냥 바라봤고, ZF는 그걸 담았다. 그래서 또 생각이 든다. 괜히 안 찍는 날만 자책하지 말고, 찍은 순간 하나하나를 좀 더 믿어봐도 되지 않을까. 결국 카메라라는 건 그런 거다. 수천 번의 미뤄짐 속에서도, 가끔 한 번은 이런 사진을 찍게 만들어주는 기계. 그리고 그 한 번이, 아주 오래 남는다. 게다가 ZF는 색을 참 잘 뽑아낸다. 이 사진도 그렇다. 전부 회색빛 콘크리트인데, 밋밋하거나 죽어 보이지 않는다. 살짝 붉은 톤이 도는 벤치, 울타리 뒤로 살짝 비치는 나무의 연녹색, 그리고 전체적으로 억제된 그 톤이 사진 전체에 묘하게 온기를 남긴다. 진짜 말 그대로 ‘회색 도시’인데, 왠지 모르게 따뜻하다. 이건 센서가 그냥 수치대로 받아 적은 결과가 아니라, 뭔가 감정을 알아챈 느낌이다.
아마 픽쳐컨트롤은 ‘자동’으로 두고 찍었을 거다. 다시 보니까 ‘코닥 코다크롬 2’ 픽쳐컨트롤이다. 쨍하게 튀지는 않으면서, 대비가 좋다. 나중에 보정으로 손볼 수 있는 여지도 있고, 무엇보다 ZF의 색감은 밋밋하지 않다. 콘트라스트는 억제돼 있지만, 색감은 흐릿하게 사라지지 않고 묘하게 남아 있다. 이게 바로 니콘 특유의 톤이고, ZF가 필름 감성 운운해도 허세처럼 안 느껴지는 이유다.
그리고 이 픽쳐컨트롤은 정말로 필름 같다. 정확히 말하면, ‘기억 속의 필름’ 같다. 색이 강하게 튀거나, 전체 톤이 노랗게 물드는 것도 아니다. 오히려 되게 절제돼 있다. 그런데 그 절제가 묘하게 아날로그 감성을 건드린다. 디지털의 쨍한 질감 대신, 살짝 부풀어 있는 듯한 명부, 톤이 눌려 있는 그림자, 그리고 살짝 미세하게 번지는 색감들. 이걸 딱 잘라서 “필름 같다”라고 말하긴 어려운데, 사진을 보고 있으면 이상하게 추억 같고, 익숙하고, 뭔가 예전 기분이 난다. 말하자면, 실제 필름 같지는 않아도, 추억 속의 필름처럼 보이는 색감이다. 그게 바로 ‘코다크롬 2’의 매력이다. 아무 감흥도 없이 넘겼을 장면들이, ZF로 찍으면 괜히 의미 있어 보인다. 그건 분명, 카메라 덕이다. 아니, 픽쳐컨트롤 덕인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가끔 그런 생각도 든다. 여기에 후지필름처럼 카메라 내에서 그레인만 추가할 수 있으면 정말 완벽할 텐데. ZF에도 그런 기능 하나만 있었으면 좋겠다. 지금도 충분히 좋지만, 그레인이 더해지면 이 ‘코다크롬 2’는 진짜 필름처럼 착각하게 할 정도로 완성도가 높을 거다. 물론 없는 기능을 아쉬워한다고 해서 지금 사진이 덜 좋다는 건 아니다. 다만, 이 카메라가 보여주는 가능성을 볼 때마다, 괜히 더 욕심이 난다. 아무 생각 없이 동네를 걷다가 몇 장을 찍었다. 놀이터, 다리, 또 놀이터. 별 기대 없이 셔터를 눌렀고, 돌아와서 보니 전부 어딘가 조금씩 이상하게 좋았다. 놀이터 바닥의 푸른 질감은 눈에 띄게 뽀얗고 부드럽게 표현됐다. 색이 튀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죽어 있지도 않다. 오히려 이렇게 덜 자극적인 색이 사진 전체에 여유를 준다. 강렬한 햇살 없이 흐린 날이었는데, 그 덕분에 색들이 서로 싸우지 않고 잘 섞여 있다. 나무도 초록이지만, 지나치게 생기 있지 않다. 딱 그날 날씨만큼, 그날 기분만큼 나온다.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장면인데, 아무 감정 없이 무심코 셔터를 눌렀다. 하지만 돌아와서 보니, 사진 속의 색이 이상하게 좋았다. 어디서나 흔히 볼 수 있는 아파트와 빌딩인데 따뜻하고, 하늘은 흐렸지만 답답하지 않았다. 도심 속, 퇴근 시간 직전의 그 공기. 그다지 예쁘지도, 의미도 없는 풍경인데 색이 이상하게 마음에 남는다. 건물 벽면의 짙은 파란색, 광고 간판들, 흐릿한 하늘. ZF는 그런 장면을 과장하지 않는다. 대신 조용히, 정확히 기록해 준다. 그 정확함이 오히려 감정이 된다. ZF는 나에게 자꾸 말을 거는 카메라다. “괜찮아, 찍어봐도 돼.” 어디서든, 무엇이든, 특별하지 않아도 한 장 남겨보라고 부추긴다. 노출도 좀 어둡고, 색도 많이 빠졌지만, 그런 날은 그런 날대로 찍히는 것도 좋다. ZF는 굳이 ‘예쁘게’ 만들려고 하지 않는다. 그냥 있는 그대로 남겨준다. 그 담백함이 결국 사진을 더 오래 보게 만든다. 이게 뭐 대단한 사진은 아니다. 하지만 이런 사진이 쌓이면, 그게 어느새 내 시간이고, 내 기록이고, 나만의 일기장이 된다.
물론 이런 건 핸드폰으로도 충분히 찍을 수 있었을 거다. 화질도 좋고, 자동 보정도 잘 되고, 심지어 더 빠르다. 그런데도 굳이 카메라를 들고 나간 건, 조작하는 맛 때문이다. 셔터 속도, 조리개, ISO를 손으로 하나하나 맞추면서 ‘내가 지금 사진을 찍고 있다’라는 실감을 느낀다. 그 셔터감, 조리개, 뷰파인더를 보는 동작 하나하나가 어느 순간부터 사진보다 더 중요한 무언가가 되었다. 좋은 사진을 남기려고 들었던 카메라인데, 결국은 이 카메라 덕분에 나 자신을 다시 붙잡고 있다. 찍고 나서 지우지 않아도 괜찮고, 남들처럼 잘 찍지 않아도 괜찮다. 그냥 ‘찍고 있다’라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다.
언젠가부터는 목적 없이 셔터를 누르는 일이 익숙해졌다. 뭘 찍겠다는 의도도 없고, 대단한 장면도 아니다. 그냥 길을 걷다가 멈췄고, ZF를 들고 있었고, 그래서 찍었다. 막아둔 펜스, 덩그러니 놓인 자재, 아직 정리되지 않은 공사 현장. 혼란스럽고 불완전한 장면인데, 묘하게 좋다. 도심 한복판, 잿빛 하늘 아래 줄지어 선 상가 건물들. 혼잡하진 않지만, 적당히 살아 있는 거리. 이 풍경은 매일 봤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지만, 사진으로 담기니, 묘하게 고요해 보인다. 광고 간판이 가득한 벽면도, 전선과 간판이 얽힌 거리도 ZF로 찍히면 과장 없이, 그대로의 질감으로 기록된다. 이 도시의 무심함마저도, 어딘가 조용히 살아 있는 느낌이다. 거리를 걷다 보면, 특별할 것 없는 장면들이 반복된다. 보도블록 위를 걷고, 상가 앞을 지나고, 하천 옆을 스치듯 지나간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카메라를 들고 있었다. 별다른 의도도 없이, 그저 ‘뭐라도 하나 남겨야지’라는 생각 하나로 셔터를 눌렀다. 그런데 이상하게, 돌아와서 본 사진들은 하나같이 마음에 남았다.
사진을 정리하다 보니, 그냥 커피 마시러 들른 카페에서 찍은 컷들이 괜히 정겹다. OOZY COFFEE라는 이름의 카페다. 잔 위로 미끄러지듯 올라간 아이스크림은 어딘가 엉뚱하고 귀엽다. 아이스라떼 위에 얹어진 아이스크림은 쉽게 녹지 않고, 잔 위에 살포시 얹혀 있으니, 마치 잔이 모자를 쓴 것처럼 보인다. 조명은 따뜻하고, 테이블의 나뭇결도 부드럽게 살아있다. 빵은 투박하게 생겼지만, 사진 속 질감이 참 고소해 보인다.
이런 장면은 스마트폰으로도 충분히 찍을 수 있었겠지만, 굳이 ZF를 들고 갔던 이유는 셔터를 누르는 그 감각 때문이었다. 손에 감기는 무게, 조리개와 셔터스피드를 직접 조절하는 손맛, 그리고 뷰파인더 안에서 확인하는 그 순간의 조용한 긴장감. 사진을 찍는다는 건 단순한 기록이 아니었다. 어떤 날, 어떤 장소에서, 어떤 마음으로 그 컷을 남겼는지가 고스란히 담기는 일이다.
그 외 니콘 ZF로 찍은 사진들이다. 어둠 속에 혼자 떠 있는 ‘진입 금지’ 표지판, 형광등 아래의 전기차 충전기, 편의점 앞 포장 테이블, 벽면의 구조와 배선들, 텅 빈 학교 담장까지. 모두 어딘가 낯설지 않은 풍경인데, 이상하게 시선을 끌었다. 어둠은 어둠대로, 빛은 빛대로. 강한 대비나 과한 밝기 없이, 그 장면이 가진 정서를 그대로 끌어낸다. 중복되는 사진이 있다는 걸 알아도 쉽게 지우지 못하는 건, 아마도 그 순간을 한 번 더 붙잡고 싶은 마음 때문일 거다. 지우기가 아까워서 그저 올려본다. 그중에 내가 찍은 사진, 다른 사람이 찍은 사진도 있다. 사진만 올리면 검색 유입이 안 될 것 같아 뭔가 그럴듯한 말을 덧붙이긴 하지만, 솔직히 말하면 그중에 나도 쓰면서 ‘이건 좀 구차하다’ 싶은 말도 있다. 그래도 뭔가 붙여야 할 것 같아서, 결국 말로 사진을 포장하게 된다. 글 적게 쓰고 사진만 올려서 조회 수 잘 나오면, 그냥 사진만 올릴 텐데. 그런데도 이상하게, 사진을 찍고 고르고 정리하면서 괜히 말 한 줄 얹고 싶어진다. 꼭 누가 보지 않아도, 꼭 좋은 반응이 없어도, 그냥 내가 찍은 이 장면에 대해 나 자신에게라도 설명하고 싶은 마음. 말로는 검색 유입 운운하지만, 사실은 사진을 그냥 던져놓기에 아쉬운 마음이 더 크다. 어쩌면 그 말들이야말로 사진을 찍은 이유 같기도 하다. 그렇게 사진이 글을 만들고, 글이 다시 사진을 보게 만든다. 결국 중요한 건 뭘 얼마나 잘 찍었냐가 아니라, 내가 왜 멈췄고 왜 셔터를 눌렀는지, 그걸 기억하려는 과정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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